제 2 호 대리만족, 현대인이 만족감을 느끼는 방법
정기자 장아현 ahyeon_1230@naver.com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서 더 나아가 영상, 책, 사진 등의 창작물로부터도 많은 감정을 느낀다. 이것은 타인이 자신의 내적 욕구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바라볼 때에, 그들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투영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만족감을 얻어낸다. 바로 이것을 “대리만족”이라고 한다. 여기서 대리만족이란 타인의 성공으로부터, 또는 원래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부터 얻는 만족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만족하기 위해 행동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기 위해서는 만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나’의 환경에 만족하기 위해 스스로의 내적 욕구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만족의 감정을 타인의 성취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올해 우리를 가슴 졸이고 손뼉 치게 하며 열광시킨 것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메달 순위 16위로 막을 내린 제32회 도쿄 올림픽이다. 사람들은 국가대표 선수가 자신의 종목에서 승리하였을 때 큰 희열을 느낀다. 그들을 응원하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답답해하고 가슴을 졸이고, 또 즐거워한다. 이러한 올림픽 과정 안에도 현대인들의 대리만족 심리가 깊숙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과 투혼을 바라보고 있자면 큰 짜릿함이 느껴진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으며, 갖가지의 상황 속에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환호와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행보는 팬데믹 시대 속 지친 국민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대리만족의 심리가 반영되어 사람들은 그들에게 공감하며 함께 즐겼기 때문이다. 대리만족의 시대 대리만족을 통한 사회현상은 본질은 같지만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자녀를 통한 부모의 목표 실현 욕구가 그의 예이다. 가까운 타인에게 자신의 목표 성취를 대입하려는 심리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원래 목적과 다른 목적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대리만족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욕구 만족을 위해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목표 성취를 강요하는 순간, 자녀와 부모 그 누구도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욕구를 지닌 주체와 이를 실현 하고자 하는 주체 간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과한 교육열 역시 부모의 내적 욕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내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대리만족의 양상이다. 대리만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유튜브”가 아닐까 싶다. 유튜브는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 실현의 공간이 되어준다. 유튜브 시장이 확대되며 기존에 없던 다양한 콘텐츠들이 자리 잡았다. 자신의 여행 영상을 담아내는 사람, 반려동물 영상만을 올리는 사람, 일어날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상을 보여주는 사람, 새로 구매한 명품의 포장을 뜯는 걸 보여주는 사람,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촬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사하는 모습만을 찍어 올리는 사람도 있다. 여행, 반려동물, 타인의 일상 등이 담긴 영상을 보면 우리는 대리만족의 의미 그대로, 대신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다양한 영상 중에서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일명 ‘먹방’은 유튜브 시장이 활성화 띄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에서 대리만족의 개념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에 따르면 먹방 시청자 1,868명을 대상으로 시청 이유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간접 경험할 수 있어서가 39.7%, 보는 것만으로도 호강하는 느낌이 들어서가 25.7%,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러서가 14%의 응답을 기록하였다. 그 외에도 외로움 해소와 재미 등의 응답이 존재하였다. 먹방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식욕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따라서 다른 부가적인 것들은 모두 제치고, 오로지 먹는 행위를 보는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오직 먹는 장면만 올려달라는 요청 댓글이 먹방 영상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은 음식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반영된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온 대리만족의 형태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욕구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먹방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대리만족, 어디까지 누려야 할까? 뇌 속의 거울뉴런이라 불리는 신경세포가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가능하게 만든다. 다른 이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과 동일하게 반응하는 뉴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인 리촐라티 교수가 발견한 이 거울뉴런이 바로 우리가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리만족은 인간에게 이롭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으며, 인간이 지닌 욕구를 간접적으로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를 통해 일상 속에서 큰 부담 없이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대리만족은 바쁜 일상 내의 휴식이며 행복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쯤에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과연 대리만족으로 뒤덮인 일상이 마냥 좋은 것인가. 대리만족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어디까지 누리는 것이 적절할지 고민을 해봐야만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602명을 대상으로 여가활동 설문조사를 한 결과, 60.8%의 응답자가 대리만족형 콘텐츠로 여가를 보낸다고 응답하였다. 이렇게 대리만족형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현대인들에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삶의 활력소 면에서는 직접 체험이 훨씬 유의미하다. 간접체험은 현장감 있는 경험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 어찌 보면 대리만족은 가상과 현실 사이쯤 위치한 이상으로부터 구현된 만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간접체험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감각 둔감화’ 증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중 대리만족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대리만족으로 인한 현실의 잠식이다. 대리만족에 익숙해져 나의 목표를 돌보지 않고, 그의 성취에 힘쓰지 않는 것은 현실을 뒤로 하는 것이다. 현재 흐르고 있는 시간은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제 2 호 탈모 공약을 바라보는 2030세대의 변화
정기자 송지민 wmzmin2@naver.com # 정치권에 심어진 ‘탈모 공약’ 얼마 전 이재명 대선후보는 공식적으로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앞에서 다루었듯 탈모로 고통받는 2030세대는 생각보다 많기에 이번 ‘탈모 공약’은 청년층에게도 유효한 공약일 수 있다. 다만 이재명 후보의 탈모 공약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란 비판이 상대 후보인 안철수 후보 측에서 나왔다. 안철수 후보 측은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대신 탈모 치료제 복제약의 가격을 낮춰서 가격부담을 낮추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JTBC, 글로벌리서치 등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의 탈모 공약 찬반 비율은 오차범위 안에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탈모 공약의 첨예한 찬반비율은 탈모에 대한 우려에도 자칫 대선 공약들이 포퓰리즘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확실한 점은 이재명 후보의 여러 공약 중 탈모 공약은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JTBC가 실시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관한 찬반 여론조사는 2016년 이후 당사 최다 참여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탈모 공약은 탈모 인의 권리에 대한 논의를 촉진했다는 의의가 있다. 탈모는 모든 세대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으로 큰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하지만 탈모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고 지속적인 탈모 치료제 복용이나 모발이식을 해야 하기에 평생에 걸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즉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상당한 재정지출이 불가피하다. 탈모보다 치명적인 암이나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돌아갈 건강보험 혜택이 줄어들거나 최소한 건강보험료가 오를 것이기에 탈모 공약은 정치적 관점과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 탈모 인의 권리가 떠올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탈모 치료는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저소득 계층은 탈모 치료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탈모 치료를 단순 미용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탈모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간과하는 생각일 수 있다. 특히 소득이 낮아서 탈모를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다면 그 스트레스는 더욱 클 것이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저소득층의 탈모 치료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당장 실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논의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는 앞으로도 정치권에서 나온 탈모 치료지원 공약들이 그저 포퓰리즘 공약인지 탈모 인을 위한 실현성 있는 공약인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다. # 탈모와 그 미래 정치권에서의 탈모 공약은 탈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탈모는 직접적으로는 (당뇨 등의 질환과는 달리) 합병증 등 건강상의 위해를 미치지는 않고, 단지 개개인의 외관에 위해를 미칠 뿐이다. 그럼에도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죽지 않을 수준’의 건강을 보장했던 건강보험이,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강’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변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건강’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는 것이다. 기존의 건강의 개념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일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의, 그리고 수준급의 의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건강의 개념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매년 접하는 뉴스이지만 올해에도, 2021년 OECD국가들 가운데 한국의 자살율은 1위이며 행복지수는 37개국 가운데 35위라는 소식이다. 지금으로서는 탈모 공약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 건강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 사회가 추구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 2030세대의 탈이념화 사실 이번 탈모인 지원 공약을 넘어서 후보들의 공약이 2030세대에게 역효과를 불러온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본소득공약과 탈원전 공약을 들 수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무상으로 기본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경우에 기본소득이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 청년층은 기본소득이 실현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기본소득으로 인한 세수 부담이 온전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한다. 탈원전 공약은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점차 줄여나갈 필요가 있겠지만 이 역시 청년층에게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강하며 탈원전 정책이 급격한 전기료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본소득과 탈원전 정책이 청년층에게는 특정한 이념 공약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진보의 기조는 친환경주의, 불평등 감소, 정치적 올바름 등을 들 수 있다면 보수의 기조는 신자유주의, 시장과 기업에 친화적 제도, 능력 우선주의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청년층은 과거 586세대와 달리 상당히 탈이념화 되었기에 특정 이념의 성향을 드러나는 공약보다 자신들에게 무엇이 이득인지를 더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가 들고나온 여가부(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호응하는 20대 남성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역시 탈이념화에 따른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청년층은 현 정부가 이념적 잣대로 젠더 정책을 세웠다고 본다. 그 반대급부로 여가부 폐지라는 극단적 공약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넘어 2030세대의 탈이념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계속 헛다리를 짚을 가능성이 높다. # 2030세대는 변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기존의 어떤 대선보다 2030청년층이 주목받고 있다. 왜냐하면 2030세대는 거의 언제나 진보적 후보를 지지한다고 여겨졌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청년층이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변을 보이면서 과거의 고정관념이 깨졌다. 이는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점점 심화되는 경쟁 사회에서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 된 청년층이 적극적으로 탈이념화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층은 이번 대선뿐 아니라 다음 선거에도 이념에 따라서가 아닌 자신을 존중한다고 여기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2030세대는 진보에 대한 기대감보다 자신에게 무엇이 더 유리할지를 계산할 줄 아는 세대로 변모해가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1980년대] 빛바랜 80년도 교지의 빛
오지윤 정기자 1.1980 년대 자하와의 조우 한자로 시작된 표지에서부터, 세월에 변색된 종이는 80년대 교지가 나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30 년도 더 된 교지를 펼쳐 보면 그 당시 선배들의 정신과 한국의 역사적 이슈가 상명인의 관점에서 담겨있다. 이 중에서 80년대 교지는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시기에 쓰인 만큼 인상적인 글들이 많다. 전체적으로 이 시대의 교지는 자하 교지 편집부의 선배들이 직접 창작 한 시, 소설, 수필, 평론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이 "자하 문단"안에 기록돼 있다. 그만큼 그 시대의 많은 젊은 청년들이 미래의 문학도를 꿈꾸고, 문학에 대한 열정이 많았다는 걸 알 수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주제도 자주 등장한다. 1965년 개교 당시 '상명 여자 사범 대학'으로 시작하여 1996 년에 비로소 현재 남녀 공학인 상명대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여성에 대한 관심과 고찰이 이해되었다. 그 다음으로 주목해보아야 하는 주제는 그 당시 한국의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 있던 청년들과 경제발전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지성인으로서의 대학생다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교수님의 서평과 대학생들의 고민을 담은 다양한 주제가 담긴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이 기대되는 탄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2. 제 13 호 (1981 년) 먼저 1981년도 교지는 이 기사에서 다룰 교지 중에 가장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메카로 세련된 표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포토에세이에 서부터 취재 기사, 한국의 예술, 한국의 종교, 그리고 자하 문단까지 인문학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내용을 담고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부업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취재한 기사인 "대학생 부업의 현상과 문제점"이었다. 현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하는 것처럼 이들도 부업을 했었는데, 직종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현 대학생들은 학원이나 과외, 편의점 등과 같은 일을 한다면, 당시에는 대학생 사이에서 과외 금지 조처로 인해 학습지와 같은 시험 문제지의 수요가 늘어나 학습지 배달과 같은 일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밖에도 보험 가입 확장 요원과 같은 영업직, 무역 회사원, 인구 시장 조사 요원, 외국 구매자를 위한 연주 서비스 요원, 개인 회사 사장 비서, 그리고 미대생의 경우 의류 디자이너와 같이 현재 대다수의 대학생이 졸업 한 후 뛰어 든 취업전선에서 비로소 경험할만한 일을 이미 하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도 견디기 힘들 수 있는 일들을 이 당시 대학생들은 부업으로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 정치적 사건이 우리에게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생활에 와 닿는 변화라는 것을 느꼈다. 3. 제 14 호, 16 호 (1982 년, 1984 년) 1982년도의 교지는 "현대 여성의 가능성"과 "한국교육"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로 이루어져 잇다. 그중에서도 진로에 대한 내용을 다룬 "현대 여성의 가능성" 부분이 인상 깊었으며 당시 사회에 나가 있던 선배들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필요한 역량과 같은 조건들을 취재한 기사와 교수님들의 서평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과거 본 대학이 사범대학이었던 만큼 교직으로 진출한 선배들이 많았고, 그 직업군으로는 교사, 교수, 사서, 비서, PD, 영양사, 연구원, 출판사 직원, 공무원, 화실경영 등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문학이다. 교지 안의 기억에 남는 문학 작품 중에 1984년도 교지 안에 수록된 시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세검정"이라는 제목의, 당시 국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선배님이 쓰신 시다. 세검정 민영흥/국어과 3학년 1 곳곳에는 가슴 허물린 절벽 오르기 힘든 곳이 아니라 오르고도 즐거움을 거부하더니 어느 가지 치는 날 솎아진 잎사귀되어 메달리게 되었다. 산등성이 목덜미를 발등으로 찍어대는 여린 살냄세 피로한 날냄세들이, 그렇게 쉽사리 서로의 비림을 용서하지 못하여 산동네 빗줄기는 더욱 굵고 산동네 눈밭은 더욱 두꺼워 우리는 더욱 아프게 맞는다. 2 되돌아 보면 멀미가 나는 시간의 모서리에서 뒤늦은 현기증은 질펀한 세상을 토해내고 차리리 고독한 공허이기를 차라리 손시린 외면이기를 하여묻어도 사람은 말이 없고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이브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에도 할미가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난 때에도 비명 아니면 눈물 아니면 피라도 뿌리며 꿈틀대고자 했던 것은 3 우리들 돌팔매질 봄가을 휘어돌아 샛길이 한길되더니 어느날 성황당 돌기둥이 보인다. 천둥 번개가 하늘벽을 허물어 때리면 용이다. 낡은 실밥 두툼한 가랭이에서 아픔 다하도록 허물깎아 내더니 그것은 무에서의 새로운 모둠이 아닌 네 안에서의 깨달음이었다. 이 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이유는 매번 세검정을 지나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상명인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써 내려간 그 문학적 감성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보고 몇 년 전 학교 축제에서 글짓기 대회를 열었을 때 입상했던 동문의 짧은 시가 떠올랐다. 언덕 지각이야 뛰고 싶니? 정신차려 "상명대"야 Frozen Duck 언 덕 Frozen Duck 그 당시 '언덕'시가 1 등이었고, 'Frozen Duck'이 2 등을 수상했다. 둘 다 무릎을 탁 치게 하고 웃음 짓게 되는 글이다. 흥미로운 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시들보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글이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현대는 이처럼 재밌고 쉽게 읽히는 문학작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현시대의 유머와 예전 문학작품의 감성, 둘 다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4.17 호 -22 호 (1985 년 -1990 년) 지금까지 문학과 여성, 다양한 주제의 서평을 다루었던 1981년부터 1984년도 교지까지 살펴 보았다면 이와 반대로 1985년에서 1990년도 까지의 교지부터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주제들이 주를 이루었다. 문화로 본 한일 관계, 식민주의와 주체성 확립, 분단과 통일, 한국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내용이 다루어졌고, 이 중에서도 1987년도 교지에 실려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기사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다. 이 기사는 이 시기에 서구국가 제도가 한국에 들어오고, 독립 이후 맞닥뜨린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정부의 통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당시 경제성장의 상황이 쉽게 그려졌다. GNP 성장 중심의 개발전략으로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극심한 소득 불균형과 높은 외자 의존도 등과 같은 문제점이 남아있었다. 이 기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장기적인 경제정책과 경제 운용에 있어서 민간주도형으로의 변화, 인간 자본 축적에 관심을 돌려 경제자립을 하는 것을 꼽았다. 이후 실제로 이루어진 해결법들이기에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의미 있는 기사였다. 5.소감 이 당시 교지들에 특징 중에 신기했던 것은 교지편집부원들의 글보다는 교수님, 다른 대학교 학생,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투고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우리 또한 투고를 받고 있지만, 이 시대 교지에서 받은 만큼의 많은 투고는 받지 않는다. 이것은 교수신문사 기자 캠프에서 만난 타 대학교의 교지 편집부원들에게 들어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현재 대학교의 교지편집부는 문학과 수필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조금 더 실용적이고 정보를 포함하는 글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종이책이 아닌 웹진으로, 매체도 변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현재 추세와 과거 모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사를 쓰며 이를 확실히 느꼈다. 또한 한 가지 더 느낀 점은이 당시 대학생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과 성장을 해왔다는,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들도 취업과 진로 문제로 치열한 청춘을 보내고,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구조적인 문제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1980년대의 대학생들은 지금의 기성세대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혐오 문제 등과 같은 사안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갈등을 맺고있다. 이러한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우리는 같은 문제를 가진 공동체라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시대적 배경과 공유되는 문화, 당시 사회적 인식과 같은 맥락을 알려고 하고, 이에 기초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자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순간 이어져왔던 마음속의 차별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끊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서로 한 걸음 씩만 더, 열린 마음을 가지면 해결될 수 있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왜 제일 해결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많은 고찰과 생각을 하게 해준 자하지만, 에너지도 많이 받았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시대에서, 당시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한 선배들의 글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기운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또한 상명대 학교 선배들의 노력이 있기에 지금의 교지 편집부가 있을 수 있었고,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약 30년이 지나 빛이 바랜 1980년대 자하 속의 빛나고 멋진 기사들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1970년대] 시작
편집장 정한희 1.70 년대 '상영 사대 (현 자하)와의 만남 자하의 첫 울음을 보았다. 속은 노랬고 투명한 작은 벌레도 글자 사이를 걸이 다니고 있었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한 줄을 읽기 힘든 것이 흘러간 세월을 께닫게한다. '상명 사대'는 겉모습만 보고 외면하기에는 예쁜 구석이 많은 책이다. 한자로 써진 제목에서 복고풍이 솔솔 불어 온다. 투박하게 통으로 감싼 바닐포장도 나름 멋스럽다. 편집실 문 앞 책장에 트로피처럼 서있던 교지를 손에 쥐고 펼쳐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 먼저 상명의 언덕에서 지내 A들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차 올랐지 만 한편으로는 어떠를 깨 버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제는 역사책이되어 버린 '상명사대'는 어떤 것을 품고 있을까. 2. 자하의 겉 1965 년 상명여자고등기예학원이 상명 여자 사범 대학이라는 '대학'의 명칭을 얻은 지 4 년 만에 교지가 생겼다. 처음 교지의 제호는'상명사대'였으며 1965 년 배상명 학장님의 창간사로 시작한다. 상명사대는 지금의 자하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자의 사용이다. 지금이야 한자는 중의적이거나 생소한 단어의 뜻을 보충하고자 할 때 첨부하여 쓰이는 정도지만 70년대 당시 교지에는 한자를 모르면 한 문장도 알기 힘들 정도로 한자가 많이 섞여있다. 또한 문자를 세로로 나열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문장을 진행하는 한자 문화권의 특성도 보인다. 이 가운데 영어와 일어까지 섞여있으니 교지 한 권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높은 지식 수준이 필요했을 것 같다. 복잡해 보이는 문장들과는 반대로 내지 디자인은 담백하다. 목차만 컬러로 코팅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들부들한 종이에 글과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다. 당시엔 이미지 파일을 찾고 사용하는 것이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그린 손 그림을 복사하여 첨부한 것이 많다. 그래서인지 더욱 정성스럽고 푸근하게 느껴져 집중이 잘 되었다. 내지 여백에는 동물이나 식물을 작게 그려 넣어 찾아 읽는 재미도 더했다. 사진으로 채워진 페이지도 있다. 창간호부터 목차 앞부분에는 학교 행사의 모습이나 캠퍼스 전경을 찍은 사진들을 배치했다. 덕분에 70년대 캠퍼스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물로 가득한 지금의 캠퍼스와 달리 당시에는 건물과 강의실도 적고 심지어 포장되지 않은 길목도 보인다. 조금 더 자연친화적 인 캠퍼스였을까. 학교 행사를 기록한 사진에서는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75년 개교 10주년 기념행사에는 남자는 양복, 여학생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항상 한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것은 아니며 중요하고 공식적인 자리에만 한복을 차려 입고 참석했다. 중등교육 세미나 장면에서는 현수막을 수기로 제작하여 걸어 놓은 것도 보인다. 지금은 자하제에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보지만 70년대 자하제는 학생들이 직접 연극을하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이끌며 즐겼다. 교내 사이클 대회를 열고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며 지덕체를 고루 함양하기위한 열정도 보인다. 지금은 생소한 학도 호국단의 모습도 담겨있다. 창간호부터 7호까지는 학생회가 교지 편집 위원을 꾸려 상명 사대를 제작했고 8호부터는 상명여자사범대 학교학도 호국단이 제작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8호부터는 학도 호국단과 집단적인 행사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학도 호국단에서 상명사대를 제작한 것이 교지의 언론 보도 자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해 본다. 3. 자하의 속 70년대 상명 사대, 현 자하의 구성과 내용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상명사대는 몇 가지 고정적인 메뉴들이 있다. 교수 논단, 학생 논단, 자하 문단, 번역 소설, 특집 기사이다. 지금의 자하는 교지 편집부 원들이 작성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학생회와 학도 호국단이 편집 위원이되어 재학생, 졸업생, 그리고 교수님들에게 원고를 청탁 받아 상명사대에 실었다. 제작의 주체를 학교 구성원들에게줌으로써 학생들의 고민과 감성, 그리고 일상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 내고있다. 상명 사대는 모두가 참여할 수있는 교지 였다는 것에 열린 언론으로서의 공정적인 의미도 갖는다. 학교 구성원들이 작성한 고정적인 메뉴들은 크게 학술 관련 글과 문학 관련 글로 나뉜다. 교수 논단은 학술적인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다. 사범 대학의 특성에 걸맞게 교육과 관련된 논평 기사가 주를 이루며 연구 논문을 실어 학술지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교수님들과 좌담회를 열고 내용을 기록한 글도 자주 보인다. 좌담회의 주제는 학술적인 내용이 많았고 사회적인 논점에 대해 토론 하기도한다. 여성을 주제로 한 좌담회가 눈에 띄었는데 양성이 사회적으로 평등한 사회, 여성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우리도 여자 사범 대학으로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학생 논단은 자신의 전공에 대한 연구와 올바른 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70년대 대한민국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풍긴다. 독재적인 군사 정권은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했고, 잃어버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국민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며 사회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바른 생각을하고 바른 것을 배우고 바른 사회로 이끌기 위해 학생들도 발 벗고 나섰다. 학생논단에서는 자주적인 이념을 확립하고 올바른 교육의 지표를 탐구하기 위한 고민들이 담겨져 있으며 새로운 역사 창조에도 관심을 나타낸다. 거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학생들은 문학적 감성을 놓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이 창작한 시, 소설, 수필을 자하 문단에 실었다. 자하 문단은 교지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았으며 문화, 음악, 미술 등 예술 감상문도 기록했다. 번역소설에는 일문과 영문으로 된 해외 유명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고 수록했다. '꽁트' 라는 메뉴도 잠시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도 담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집 기사는 70년대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다. 정치적인 문제는 비판적으로 꼬집은 글이 보이지 않지만 사회 문제도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친다는 것이 아쉽기 만하다. 몇 호에 걸쳐 특집기사의 주제는 '현대'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전통적인 가치가 등한시되는 것을 보며 어떤 것을 지향해야하는지 고민한다. 6호의 특집 기사는'현대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의 발전에만 치중하는 현실과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드러나있어 인상적이다. 4. 소감 불안정한 사회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다짐과 우리가 가야할 곳에 대한 우직한 시선이 가득 담겨있는 상명사대는 오늘날의 언덕을 엄숙하게 만드는 책이다.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지금과 달리 국가적으로 언론의 내용을 검열하고 통제하던 당시에 상명사대가 얼마나 훌륭한 학술지이자 인기있는 문학지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선배들이 만들고자 했던 바른 세상에 우리는 얼마나 더 가까이 왔을까. 읽기도, 읽어도 힘든 70 년대의 상명 사대는 가슴 아픈 명저이다. - 한글보다 많은 한자 덕분에 같이 상명사대를 읽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1990년대] 우리에서, 나 그리고 너로
이강현 명예기자 1.1990년대 자하와의 첫만남 그동안 '90년대'라고 하면 나와 내 또래 선후배들이 태어나던 시기이니 가까운 과거이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래서 90년대 대학생들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90년대의 선배들은 오늘날의 대학생들과 다른 점이 정말 많았다. 오히려 90년대의 교지들을 읽다보니 우리의 문화나 가치관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 2.1990년대 자하의 흐름 91년부터 93년(24호~27호)까지는 여전히 앞선 80년대 세대의 화두인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식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은 단결하여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94년부터 96년(28호~30호)에는 우리가 들어본 'X세대'로 세대가 교체되며 혼란스러워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교지는 점차 단결과 투쟁보다는 개인의 권리, 다양성을 존중하고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시대 이행을 보이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또 세계화를 위해 나아가려는 모습들이 교지에 실려 있다. 97년부터 98년(31호~32호)에는 정보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때문에 정보, 컴퓨터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 실업 문제나 대학 구조 조정 등의 일들이 대두된다. 99년부터 00년대(33호~34호)에는 다양성은 물론이고 비주류문화,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 등 세상의 사각지대까지 구석구석까지 시선이 닿는다. 목차 또한 다양성을 담으려는 듯 주제별로 나눠놓는 획기적인 구성을 이룬다. 3.24 호 -27 호 (1991년 -1993년) 이시기 교지의 모든 도입은 '시 (詩)'로 시작된다. 특히 박진관 시인의 <안개시대> 나 문병란 시인의 <최루탄 반가>, 정태춘 시인의 <아, 大韓民國>과 같이 현실을 비판 고발하고 민주화를위한 염원과 의지가 담긴 시들이 주를 이룬다. 이 시기의 교지는 목차들 중 공통적으로 '이구동성'과 '말 소리 함성 ', 또 '이론과 실천 '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구동성 '은 주로 사회적인 이슈나 기자들의 개인 체험 기사 위주로 쓰였단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이론과 실천'은 당대 정권에 관한 기사들로, 또 '말 소리 함성'은 대학과 관련된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 매 부 만화 코너가 존재하고 문화평 등의 예술 논평이 실려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91년도 24호 자하의 '이구 동성'에는 지방 의회 선거, 언론의 기능, 선생님의 꿈, 각기 각층에 존재하는 '껍데기'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었다. 또 '말 소리 함성'에는 학원 민주화 투쟁과 사립 학교 법, 학생회 등에 관한 기사들이 있었고 이론과 실천에는 사회 성격론과 변혁 운동, 통일 문제, 토지 문제 동 다양한 시사 문제에 관한 논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지의 재정비를 위해 91년 다음 해 인 92년도에는 교지 발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93년에는 특이하게도 3 권의 교지가 발행된다. 92 년도를 회고하며 그때의 이야기를 담은 93년 25호와 93년 중반기의 내용을 담은 26호(여름호), 또 93년도 하반기의 내용을 담은 27호(겨울호)로 그 구성을 이룬다. 25 호에는 '이론과 실천'이 가장 먼저 목차를 이루고 있고 그 내용으로는 '92 년 대통령 선거와 진보 운동의 미래 '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때의'이구동성 '코너는 기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다룬 개인 기사가 주를 이룬다. 또 '말 소리 함성'에서는 과학생회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등록금 문제도 대두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있다. 93년 여름호인 26호는 김영삼 정권으로 정권이 바뀌며 무엇이 달라 졌는지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는'무엇이 달라 졌는가 '코너로 시작된다.이시기 교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실었다는 것인데 특히 만화 '여성 이야기 주머니'는 오늘날 교지에 실어도 무방할만큼 현실을 꼬집고 있었다. 또 이구동성에는 '신세대 연애관'과 '성문화'에 관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다. 93년 겨울호 인 27호에서는 '편집실 기획'이라는 코너가 새로 생긴 점이 특징적이었다. 4.28호 -30호 (1994년 -1996년) 94년부터 96년의 교지에는 이전과는 다른 이름 인 X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혼란과 과도기적인 모습들이 담겨있다. 이전 세대인 386세대엔 주로 개인의 자유와 안정보다는 민주화를 향한 단결의 모습들이 더 강조되어왔다면 X세대엔 그 초점이 개인에게로 돌아 간다. 28호 교지에는 이와 같은 변화를 비판적으로보고 성찰하는 내용의 만화가 실려 있기도하다. 28, 29 호 권두시가 각각 김남주의 <자유>, 전 무용의 <강의실에서>와 같이 스러져가는 개인의 의지를 비판하는 시라는 점으로 보아 그 시대상의 변화에 비판하며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29 호 교지에서의 이론과 실천 코너의 '세계화', '세계화의 현장', 그리고 자하 논단 코너의'쓰레기 종량제', '환경 운동 단체의 정치성 '등을 통해 세계화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9호 교지엔 이전에 한국 문화 중심이었던 문화에서 벗어나 '일본문화', '애니메이션', '문화 탐방'등의 코너를 넣어 세계화로의 움직임을 증명했다. 96년도는 여러모로 자하에게 뜻 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우선 '상명여대'에서 남녀 공학 '상명대'로 변화 한 것의 영향력도 있었고 교지도 30 주년을 맞아 그 역사를 싣고 이전 두 해의 교지와는 다르게 빳빳한 컬러 사진을 대량 삽입한 모습을 보인다. (그 영향 때문인지 타 교지에 비해 그 두께가 현저히 줄었다.) 내용적인 측면도 '교육 개혁 !!!'이라든가 '서울대 동성애자 모임 탐방',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혁이다 ~ 신촌 공간의 정체성 모색'등과 같이 파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96년도에는 또 이전에 전적으로 싣다시피했던 만화 코너가 사라지기도한다. 5.31호-32호 (1997년 -1998년) 97 ,98년 교지엔 정보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실제로 교지뿐 만 아니라 국내적인 분위기도 그랬다. 우리 학교 96 학번인 연상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군대 갔다 온 2 년 사이에 갑자기 컴퓨터가 상용화 돼서 놀랐다는 증언이 있다.) 인터넷의 사용이 일상화되기 시작하고 이전에는 소수만 가지고 있던 컴퓨터 역시 상용화되는 등의 변화를 겪는다. 31 호 교지엔 아예 '정보 시대-정보 속으로 끼어 들기'라는 코너가 만들어져 그 변화를 입증한다. 이전에 '이론과 실천'의 주된 내용들은'학술 기획'과 '시대 읽기 '로 나뉘어져 전자에는 논문들이 후자에는 당대 정치를 비판하는 기사가 올라온다. 이때 눈에 띄는 점은 'TV 토론'이 등장한 것인데 이를 통해 점점 TV와 컴퓨터의 시대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여서일까(?) 31호 교지의 구성도 혼란하기 그지 없다. 무려 큰 목차 만 13 개로 나뉘고 각 목차마다 두 개의 이름이있다. 예를 들면 '문화 기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대편에 '<코드명! 상상력을 잠재워라>의 또 다른 이름이 붙는 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목차 아래에는 하위 항목들이 대략 2-3 개 씩 존재해 혼란함을 더한다. 또 '색인'을 넣어 보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 권두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펴내는 글로 시작되는 것도 혁명적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꽹가리 치는 잘 생긴 학생의 표지가 인상 깊은 32호 교지는 오늘날의 자하 교지와 가장 비슷한 목차 구성을 보인다. 전체 기획 등의 기획 구성이나 여러 분야의 사회 기사를 작성한 것이 눈에 띄는데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구성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집글로는 '이 땅의 예비 실업자에게 고함', '여성 실업의 주류에 역행한다.' 등 실업, 특히 여성 실업에 중점을 두고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32호 교지에는 또 사라졌던 권두시도 다시 등장하게된다. 6.33호 -34호 (1999년 -2000년) 그러나 다시 99년과 00년도엔 목차가 주제별로 다양하게 변화한다. 별로 분류하는 목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구성을 이룬다. 예를들면 교육에 관한 이슈들을 다루던 '말 소리 함성'과 같은 코너가 '거꾸로가는 교육! 방향키를 잡아라!'(99년 교지) 라든지 '상명이라는 이름으로'(00년도 교지)와 같이 주제에 맞는 이름으로 바뀌게된다. 99년도는 아직 가상 공간, 사이버 등의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다원적 국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NGO 단체에 관한 글들을 다수 싣는 등 다양성 존중의 시작을 보인다. 00년도에는 다양해진 목차만큼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사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 시대의 이카루스 비 주 류'와 같이 아예 비주류에 관한 특집 주제가 있고 참여 민주주의라든지 비정규직, 에코 페미니즘 등 그 동안 많이 주목받지 못한 주제들을 싣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앞선 90년대 중반의 '나 ' 즉 개인의 권리에서 나아가 다양한 '너 '들을 존중할 수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7.1990년대 자하를 만난 소감 확실히 교내와 교외의 소식을 두루 전하는 교지의 특성 덕분인지, 90년대로 돌아가 우리학교와 우리나라의 10년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90년대는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격동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초기엔 단결하여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열망을 보였다면 중후반엔 개인에게 집중하는 모습들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개인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타인 개개인, 즉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단결을 중시하던 '우리'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나'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했고 후에 다양한 '너'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교지가 없었다면 영원히 잊힐 수도 있었던 그 수많은 열기와 함성들이 우리 선배들이 꾹꾹 눌러쓴 소중한 기록 덕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을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 '웹진'이란 형태로 그 겉모습이 바뀌긴 하겠지만 후에 이십년, 삼십년 뒤 후배들이 우리들의 글로 오늘날의 모습을 기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졌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2000년대] 2000년대의 자하
최다빈 명예기자 1.2000년대 자하의 흐름 2000년대, 살아는 있을 때지만 기억조차 희미한 나의 유년기, 그 때 대학은 어떤 곳이었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보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그 때 상명대학교의 교지 자하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이 들었던 나는 종간호 특집으로 쓰게 된 자하의 역사 관련 기사에서 2000년대를 맡게 되었고, 설렘에 부풀어 자하에 있는, 이제는 먼지 묻고 색이 바랜 묵은 향이 나는 2000년대의 교지 아홉 권을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 2000년대의 교지가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의 교지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를 중심으로 9권의 교지를 살펴본 후 2000년대 교지의 흐름을 교지의 구성에 따라 35호-37호(01년-03년). 38-41호(03-07년), 43호-44부(09-10년)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제 이 세 부분으로 2000년대 교지의 구성과 교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2.35호-37호(2001-2003년) 최근의 자하와 다른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첫 번째는 전체 기획 외에 개인 기사가 따로 없고 그 대신에 전체 기획 기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학내 기사가 따로 없는 최근의 자하와는 달리 2000년대 자하에는 학내, 즉 상명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한 파트로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자하 문학상은 자하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나 소설을 공모하도록 하여 가장 우수한 작품을 교지에 싣도록 한 것인데 36호까지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네 번째로 옴부즈맨은 지금의 독자투고를 칭하는 이름이다. 지금의 독자투고가 자하에 속하지 않은 상명대의 재학생이 자하에 기사를 싣는 형태라면 옴부즈맨은 상명대의 재학생, 교수님을 넘어 타대생도 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히 기사를 싣는 것이 아니라 자하에 대한 평가,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과 같이 교지를 읽은 소감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각 호의 특징들을 살펴보자. 35호의 전체기획 주제는 코메디였다. 코메디, 일상, 왜곡, 가면, 공감, 도발, 재고라는 코메디의 특징들을 소분류로 하여 기사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여는 글도 이러한 기획 주제와 연관하여 '자하기자들이 생각하는 코메디란?'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소분류를 자세히 살펴보자면 '코메디'에서는 코메디 문화에 대해서, '일상'에서는 일상과 코메디에 대해서, '왜곡'에서는 민족주의와 언론사 문제와 같은 왜곡된 현실에 대해서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에서는 왜곡된 사회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을 코메디라고 표현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나 탈북자 인터뷰와 관련된 기사들을 담고 있었고, '도발'에서는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 코메디의 목적이라고 표현하면서 여성과 트렌스젠더에 대한 기사를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고'에서는 코메디를 세상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한 수단이라고 표현하면서 인권과 관련한 기사를 담고 있었다. 코메디라는 큰 주제를 잡고 그것을 특징에 따라 분류하고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연관 지어 담아낸 구성이 밀도 있게 느껴졌다. 36호의 전체 기획 주제는 대한민국이었다. 여는 글은 35호와 마찬가지로 전체 기획 주제와 연관 지어 노래 '아! 대한민국 (가수:정태준)'으로 시작하였고 한국,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화젯거리나 문제,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17년 교지의 전체 기획 주제인 '한국에서 살아남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36호가 발행된 연도가 2002년인 것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자본주의, 노동권, 언론 등과 같이 지금도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기사와 지금도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기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와 관련해서는 민간인 학살, 학생운동과 같은 이야기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주제로 한 만큼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나 지금도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37호의 전체기획 주제는 36호가 무거운 주제라서인지 조금은 가벼운 주제였다. 대학과 생활이라는 주제였고 주제에 맞게 여는 글도 가볍게 자하 기자들의 릴레이 소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기사를 파트별로 묶을 때 제목을 속담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내용을노느 학생회, 등록금 투쟁, 대학언론, 대학교육, 농활 등과 같은 당시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노동자, 성차별, 자본주의 등과 같이 당시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37호에서 놀라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36호의 배포 불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자세한 이유를 담고 있지 않아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36호의 전체 기획 주제가 대한민국이었다는 것을 통해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필자가 참여한 2017년 51호 기사와 비슷한 주제였는데 그것이 과거에는 배포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도 멀지 않은 과거였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까우면서 분노의 마음이 들었다. 3.38호-41호(2004-2007년) 38호에서 41호까지의 자하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 기획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전체 기획을 생략하고 사회, 문화, 여성 등의 다양한 주제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 전대 교지와 마찬가지로 학내 파트를 따로 마련하여 학내의 여러 가지 소식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8호와 39호는 겉모습이 비슷한데 두께나 디자인이 잡지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먼저 38호는 학내, 사히, 사람, 문화로 구서오디어 있는데 기사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당시에 학내에서, 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던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잘 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39호는 38호와 비슷한 느낌의 겉모습을 가졌음에도 그 호만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기획은 없지만 아방가르드를 주제로 설정해서 목차나 교지 전체의 디자인이 패션 관련 제목으로 되어 있고 각 챕터 맨 앞에 간단한 설명도 정리되어 있었다. 구성은 학내, 사회, 여성, 노동, 문화로 되어있었다. 학내에서 상명대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적인데 그것은 자하39호가 2005년, 즉 상명대학교 개교 40주년 특집호였기 때문이다. 40호는 교지 발간 40주년 인만큼 상명대 학교의 총장님, 국장님, 그리고 주간 교수님의 축하 글로 시작이되었다. 구성으로는 학내, 문화, 사회, 인권, 정치, 취업이 있었는데 학내에서는 교지 편집부에 대한 소개와 학교 취업 개발 센터 소개, 그리고 상명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7016 버스 기사, 경비 아저씨, 구둣방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 또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화제가되었던 '서울, 상명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카페에 대한 소개 기사가 있었다. 문화에는 네티즌, 20 대 외식 문화, 게임 중독에 대 한 기사가 사회에는 학교와 청소년 쉼터, 인권에는 서해 교전, 장애인, 정치에는 북한 미사일과 한미 FTA, 취업에는 투잡 열풍, 상명 인 취업, 이색 알바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역시 다른 교지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야기들을 잘 담고있는 자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41호는 조금은 딱딱 해 보였던 이전의 자하들과 다르게 겉 모습부터 단풍 나무 디자인으로되어있어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고 작고 가벼워 손에 들고 다니기도 쉬울 것 같은 느낌을주는 교지였다. 구성은 학내, 사회, 20 대, 여성과 문화로되어 있었는데 구성이나 다루는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름없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41호를 기점으로 자하의 디자인이 좀 더 친근하고 각 호마다의 개성이 잘 보였다. 4.43호-44 호 (2009-2010년) 43 호와 44 호의 큰 특징은'콘셉트'을 잡았다는 것이다. 43호의 콘셉트는 '마음 심 '이고 44호는 'HAVE '이다. 콘셉트에 맞게 표지와 목차를 만들어서 각 호만의 특징이 잘 살아있고 기사들이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3호의 표지에는 "마음을 살펴서 깊이를 찾는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이 43호 자하의 주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또 '심'이라는 한자의 다의성을 이용해서 살필 심, 마음 심, 깊을 심, 찾을 심으로 나누어서 목차를 정했 다. 살필 심에는 학내의 기사가, 마음 심에는 20 대와 관련된 기사들이, 깊을 심에는 사회, 찾을 심에는 문화 관련 기사들로 구성면에서는 이전 교지와 크게 달라 지진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43 호만의 특징으로는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쉬어가기-자하가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자하 부원들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한 편지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4호도 43호의 바통을 이어 받아 43호와 구성면에서 비슷한면을 보이고 있는데 콘셉트로 잡은 영어 단어 have가 가지고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이용해서 'have, 얻다 / 경험하다, 앓다 / 참다,하다 /시키다, 만들다'로 목차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43 호와는 다르게 기사를 종류별로 분류하기보다는 그 뜻에 맞게 분류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역시 다루고있는 주제나 내용면에서는 이전 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2000년대 자하를 만난 소감 2000년대 자하를 정리하며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최근으로 느껴지던 2000년대가 사실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그것을 똑같이 교지에 싣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마치 교지를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지금의 내 모습을하고있는 상명대 학교 자하의 선배 기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느낌이 드는 좋은 경험이었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2010년대] 차별없는 세상, 교지의 이정표
주채현 명예기자 1.2010 년대 자하와의 만남. 201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우리들이 상명대 학교에 들어와 교지에서 활동했다. 시아가 넓어졌다. 성인이되고 점점 나 자신에서 시작해, 세상으로 눈을 돌리던시기였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과 90-00세대와는 다른 문화을 누리는 세대들이 등장하여 점점 이전과는 세대 차이가 나는 시대였다. 이전 90-00세대들이 세상에 소리치고 그들의 요구를 외치던 모습들이 있었다면, 2010년대가되면서 표면적인 사회 뒤편에 숨겨진 사회의 소수자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페미니즘, 성 소수자를 비롯해 갑 문화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눈길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급격한 기술의 발달에 따라 비트 코인,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기술 관련 기사도 작성됐다. 혹자는 이러한 급격한 사회 발전과 이면을 들추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러한 방향이 50여 년간 우리 교지가 향해 왔던 길이 아 니었나 생각한다. 2.47호, 50 호 (2013년, 2016년) 2013년을 마무리했던 47 호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 간 한 해였다. 나라 안에서는 기초 연금과 일베 논란, 여러 종교계의 정치 참여 문제, 통합 진보당 사건 등 국내 외적으로 많은 사건이 1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 그에 따라 교지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자들의 숫자가 늘어났지 만, 타 대학에서 지금 우리처럼 교지가 발행이 중지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얘기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얘기이기도하다. 2013년은 전체 기획으로 장애인 등급제 폐지에 대해 기사를 썼다.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 조직 실장과 인터뷰하며 이러한 정부 정책에 대해 억울함을 토해낸 인터뷰 기사도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논했다. 사회의 급격한 발전 이면에 발달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장애인과 연결해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꿈꿨다. '상명 메뉴얼'이라는 주제의 수습 기획은 수습 기자들만의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기에 충분했다. 버스 이용 팁, 학교 건물의 명칭 및 소개, 도서관과 학교에서 지원 해주는 다양한 취업과 자기 계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며 신입생들의 적응을 도와주었다. 2013년도의 일반 기사는 크게 학내와 학외로 나뉘었다. 그렇지만 주제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체 기획과 동반하여 노숙인이나, 코피노와 같은 사 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해 눈길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기준을 사회에 맞춰 취야하는지 고민하는 청춘들의 목소리를 들려 줬으며, 현재 문제가 되는 청년 실업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시기였다. 대학생들은 청소년 시절 만났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변하는 대학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좌절하는 현실을 그대로 표현했다. 독자 투고 또 한 장애인 버스 7016'이란 주제로 전체 기획과 평행한 길을 걸었다. 2016년은 2013년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새로운 정부가 막을 내리는시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지인과 국정 농단을 벌여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가득하게했고, 국민들이 그들을 탄핵한 해였다. 많은 대학가에서는 이들을 규탄하며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대학생들의 힘을 보여줬다. 국민들은 뭉쳤고, 2016년 12월 3일에는 주최 측 추산 232만명이 참여하여 세계에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 주었다. 또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인공 지능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강남역 묻지마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가슴 아파했고, 그것은 남녀 성 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Are You a Feminist?'라는 표지를 걸고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소방관이든, 교사든, 학생이든, 그 누구든간에 남녀가 모두 평등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명대학교 학우들에게 들려 주려했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 첫 기사를 열어 평등을 외치는 사회를 꿈꾸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성 소수자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일반 기사는 2013년과 다르게 사회, 문화, 심리의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글을 실었다. 사회 부분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청춘들을 비판하는 세대들에게 어디까지 '노오력'해야하나요?라는 기사로 젊은 세대들의 취업이 되 지 않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 청년들이 실패하는 것이 아닌 사회 경제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는데, 과연 청춘이라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이고 부러워 할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문화에서는 힘든시기를 보내고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었다. 전시, 운동, 여행과 같은 생활로 힘들게 각자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심리에서는 현대인들이 가지고있는 걱정들과 불면증 그리고 포기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아무래도 점점 각 박해진 세상 속에 현대인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습 기획도 이러한 현실에 발 맞추어,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모습을 반영했다. '대2 병'이나 '사망년'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즐기고 놀아야 할 대학 생활이 각종 스펙, 성적에 고통 받아 몸부림 치는 대학생의 모습을 그려 냈다. 3.48호, 51호 (2014년, 2017년) 2014 년에는 우리 사회에 '신뢰'라는 것이 세월호와 함께 차갑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언론과 정부, 이 사회를 믿지 못하게되었지만, 다시 한 번 힘을 내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같았던 해였다. 48 호의 전체 기획은 대학 구조 조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상명대 학교의 많은학과가 통폐합되고 많은학과가 새로 개편되었다. 일어교육과와 불어교육과는 이제는 신입생을 받지 않으며, 이들의 변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교육적이지 '못한' 교육 정책으로 좋은 취업률을 꿈꾸었던 학과의 게시판에는 내리막인 그래프만 가득했다. 정작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온 수업은 강의명과 내용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에 맞춰 수습기획 또한 대학은 'ㅁㅁ'이다는 주제로 대학 생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습 기자들이 풋풋한 글을 써야 할 수습 기획이 월세, 상 표, 돈 먹는 하마 등과 같은 비관적 인 주제로 이제 막 시작한 대학 생활을 평가했다. 하지만 단순히 비판적이고, 어두운 대학 생활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콕 찝으며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등 행복한 대학 생활을 꿈꾸는 수습 기자들의 소망이 나타났다. 일반 기사의 경우 문화, 사회로 나누었다. 문화에서는 채식주의자부터 팬덤 문화, 문신 연애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썼다. 특히 채식주의자와 문신이 이목을 끄는데 이전의 기사들과는 다르게 세상이 평가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들도 정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위한 기사 였다. 사회에서는 비트 코인이 당연히 이목을 끌었다. 2014년 당시 아무런 주목을받지 못했던 비트 코인은 2017년을 거쳐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했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이때의 비트코인은 단순히 투기를 위한 존재가 아닌 온전히 새로운 화폐를 꿈을 꿀 수 있는 존재였다. 2017 년의 교지는 살아남아야 했다. 이미 다른 학교의 교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몇 개 남지 않은 교지는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학교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신문방송국의 일원인 교지는 폐부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교지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아야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책 'oo에서 살아남기처럼.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전체 기획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전개되었다. 북한의 도발, 살충제 달걀, 발암 물질 생리대, 초등 교사 44 % 축소 등. 세계 11 위의 GDP 규모를 자랑 할 정도로 나날이 발전하며 과거보다 살기 좋아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토 록 불안하고 분노하는 것일까? 교지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있는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받아야하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과한 요구가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차벌받지 않고 누릴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보장 받아야한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수습기획도 전체기획과 마찬가지로 '상명대학교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학교에 가는 과정을 제목으로 서술했다. '언덕에서', '교양 수업에서', '상명 보릿고개에서', '총학 없던 언덕에서'등 학교를 등교해서 하교하는 그 과정 중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존재에 대해 논했다. 특히 다양하지 않은 교양 수업, 먹기 꺼림칙한 주변 음식점 등 상명대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수습 기자들은 분노했다. 그 중 학생들의 무관심과 자질 없던 총학생회의 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일반 기사는 이전 년도 교지와는 다르게 확실히 유행을 탔다. '시발 비용'라던가 '탕진잼 ', 'YOLO'와 같은 신조어들이 쓰였으며, 청춘들의 삶을 보여주며, 또 이들을 위로하는 기사들이 대체로 많이 쓰였다. 또한 SF와의 만남이라던지 테라포밍, 기술 관련 기사들이 많이 쓰였던 년도다. 기존의 여성 학우들이 많았던 교지에 남성 학우들의 비율이 늘어나며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었다. 4.소감 이전 교지들을 보면 시, 수필 등 다양한 문학적인 기사가 가득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지금의 교지의 모습으로 정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체기획과 수습기획과 개인들이 써 내려갔던 수많은 주제의 기사들이 7권의 교지에 새겨졌다. 내가 썼던 기사도 있어서 더욱 애착이 가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더욱 나의 마음을 이끈느 것은 표면적인 사회를 보여주지 않고 그 반대편에 숨어있는 개인과 개인을 들춰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 코피노 등 누구나 이들처럼 소외될 수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급진적인 발전을 꾀하였기에 이들을 덮어버리고 무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 집중했고 다시 주목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종이로 인쇄되는 교지는 여기서 마무리되겠지만 웹진으로도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불편하겠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위해서 더욱이 우리는 사회의 이면을 들추어낼 것이다.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제 1 호 여성들의 만년필 이야기
임지혁 명예기자 (201710846@sangmyung.kr) 우리는 필기구를 어떤 경우에 사용할까? 보통 글을 적어야 하거나 문서에 서명을 해야 할 경우 펜을 손에 잡게 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있기에 필기구를 쓰게 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동시에 과거에는 그 역할을 온전히 필기구가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늘날 이 전자기기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듯이 과거에는 펜 한 자루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예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사고 싶어하는것 처럼 옛날 사람들은 예쁘고 성능 좋은 펜 한 자루를 갖기를 염원했다. 촉을 금으로 만들고 겉은 화려하게 치장된 만년필에 그 관심과 지출이 집중되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의 상명대는 과거의 상명여대가 남녀공학화된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에 자하 교정은 여성들만의 캠퍼스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일반적으로 많이 판매된 만년필에 관한 이야기는 여럿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들의 선배들이 갖고 싶어 했을, 여성들이 선호했을 만년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우리들의 선배들이 갖고 싶어서 밤잠을 설쳤을 만년필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역사속의 만년필들 1920년에는 미국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되면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의 기회가 보장되었다. 이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대됨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만년필을 사용할 일도 늘어남을 의미했다. 1920년대에 미국의 만년필회사인 파커와 쉐퍼, 콘클린 등은 이 시기 앞다투어 '레이디'라는 이름을 가진 만년필을 내놓았다. 이들은 남성용의 만년필보다는 살짝 작았으며 그만큼 살짝 더 저렴했고, 클립이 없는 대신 위에 고리가 달려서 목걸이에 고정한 채 휴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가지던 회사는 워터맨이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시장을 관망하다가 1930년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레이디'라고 이름 붙인 만년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대응이 너무 늦었다. 워터맨은 결국 1950년대에 이르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미국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고 유럽으로 그 무대를 옮긴다. 1924년 파커 레이디 듀오폴드 광고 [사진 출처: PenHero.com] 1940년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남성들은 징집되어 전쟁에 동원되었고 여성들이 사회 산업구조의 곳곳에 투입되어 이전보다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았다. 이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Lady'나 'For women'과 같은 문구보다는 'Tuckaway'나 'Demi'와 같은 중성적인 단어가 제품명으로 선정되어 판매되었다. 이러한 만년필들은 여전히 일반적인 모델보다는 약간 크기가 작았지만, 실용적이게 클립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일반 모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 1960년대 파커 45 레이디 만년필 1960년대는 68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던 시기였다. 청년세대들은 68혁명을 진행하며 반체제-반문명 운동을 진행했지만 기성세대는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달에 사람의 발자국을 남겼다. 이 시기에 가장 대표적인 만년필은 파커의 75라는 만년필인데, 이 만년필의 촉은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몸체는 순은으로 제작되어서 25$의 가격이 책정되었다. 당시의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기성세대는 기존보다 고급스럽고 비싼 만년필을 원했고 이는 여성용 만년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파커의 레이디 45라는 모델은 파커 45라는 저가 만년필에서 클립을 제거하고 외관을 금속으로 고급스럽게 치장한 제품인데 이 만년필의 정가는 7.95$~15$로 일반 모델의 1.6배~3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다. 파커의 경쟁사였던 쉐퍼 또한 레이디 쉐퍼라는 모델을 파커보다도 먼저 10$~110$의 가격에 내놓으며 고급 수요를 노리고자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20년대 가장 늦게 레이디 만년필을 만들었던 워터맨은 반세기도 넘게 지나서는 가장 본격적으로 여성을 위한 만년필을 만든 제조사가 되었다. 워터맨의 레이디 시리즈는 디자인과 소재 등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들이 존재했으며 별도의 휴대용 케이스를 동봉하는 'Agathe'라는 모델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불운히도 이 아름다운 만년필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다. 이 만년필들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판매되었지만, 여성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시대적 사건이 없었고, 동시에 이 아름다운 만년필조차도 그 수요를 자극해내지 못했다. 우리 곁의 만년필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떨까? 우리는 이미 만년필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만년필 시장은 분명 활기를 띠고 있다. '예쁜' 만년필로 '예쁜' 잉크에 '예쁜' 글씨를 써서 SNS에 공유하거나 스스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캘리그래피 문화가 여성들을 위주로 지난 5년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독 인기를 끌었던 펠리칸의 분홍색 만년필은 이미 웃돈을 얹어 거래되고 있고, 몽블랑의 '어린왕자 에디션'도 고가정책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들의 거래가는 이미 기존의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던 전통적인 만년필의 가격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2015년 펠리칸 M600 핑크 만년필 [사진 출처:pelikan-passion.com] 1980년대까지의 여성의 만년필은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고, 결코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그렇지 않아서 ‘예쁜 만년필들’은 이미 주류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만년필 시장에 편입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선배들이 꿈꾸었을 만년필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갓 출시된 저 아름다운 만년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 1 호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
김지영 신입기자 (201910675@sangmyung.kr)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 과 '정보'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플랫폼(Platform) 산업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일전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플랫폼 산업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플랫폼이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지라도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instagram’을 들으면 우리 일상 속에 플랫폼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단순히 정류장, 정거장이라는 뜻의 플랫폼 (Platform)은 이제는 경제`경영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플랫폼은 4차 산업혁명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고, 이는 시장의 참여자와 참여자를 '연결'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공동소송 플랫폼은 요즘 떠오르고 있는 ‘화난 사람들’이란 플랫폼이다. 화난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 공동소송 플랫폼으로 자주 언급되는 플랫폼이 있다. 바로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이다. ‘화난사람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누구든지 쉽고 간편하고 저렴하게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 2018년 4월 등장한 공동소송 플랫폼 업체이다. 화난사람들은 공동소송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를 모집하는 일부터 변호사의 사건 수임, 비대면 법률서비스 수행, 사건 종결까지 법률 서비스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자체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을 모아 변호사들과 연결해준 후 공동소송을 진행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사의 수장인 최초롱 대표는 201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부터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1년차 때 형사부, 2년차 때 민사부에서 근무하며 일반인이 법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일반인도 쉽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월, 창업에 나선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공동소송이었다.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변호사 사이에서는 기피 대상 1순위로 불렸다. 수천 명의 소송 참여자를 만나고 관련 서류를 받아 처리하는 일이 힘든 데 반해 손에 쥐는 돈은 적은 탓이었다. 그렇지만 최초롱 대표 변호사는 굴하지 않고 서초에 자리를 잡은 자신의 동기들과는 떨어져 용산 원효상가에 터를 잡았다. 이것이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의 시작이다. 집단소송의 경우 많으면 수천 명 정보를 일일이 이메일로 받아 전산화한다. 요즘처럼 모든 게 시스템화돼 있는 세상에서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단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착수금을 무통장 입금으로 보내는데 입금자명을 제대로 안 적고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법원에서 원하는 양식으로 데이터화해주는 집단소송 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변호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이용료를 내고 이 프로그램을 쓴다. 이는 '화난 사람들'의 주 수익 모델이다. 화난사람들은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소송 참여자들이 화난사람들 홈페이지에 소송에 필요한 서류와 피해를 입증할 증거 등을 등록하면 자체 시스템이 이를 전산화해준다. 변호사들은 고된 작업 과정 없이 정돈된 데이터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공동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사실 화난사람들이 개발한 시스템은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첨단 기술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법조계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최초롱 대표 변호사는 “공동소송에 참여한 사람들의 전화 대부분은 내가 낸 소송비가 잘 입금됐는지 묻는 내용이었다”며 “그만큼 기존 법률 서비스에 불편함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통상 공동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결론이 명확하게 난 사건은 많지 않다. 스카이에듀 사건은 소송 없이 억울함을 해결한 사례다. 온라인 강의 업체에서 서울 내 대학교와 지방거점 국립대, 치대·의대·한의대를 합격할 경우 수강료를 100% 환급하는 상품을 판매했는데, 조건을 달성한 학생들이 9개월 넘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화난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하기 전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만으로도 환급이 이뤄졌다. 화난사람들의 계획은 제보 신고 기능을 강화하고, 해당 사건의 소송을 최대한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 100명 정도인 변호사 회원 수도 늘려 나갈 예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소송뿐만 아니라 개별 사건도 플랫폼 내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예상하기 어려운 소송 결과로 끙끙 앓는 경우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집단분쟁뿐만 아니라 고소·고발, 사회문제 캠페인 등 다양한 법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슈 확인은 필수이다. 아침 눈 뜨고부터 잠들기 전까지 여러 이슈를 살펴봐야 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보고,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방송통신위원회 등 사이트에 접속해 주요 현안을 확인한다. 전국 주요판결도 훑어본다. 출근해서는 직원들과 함께 ‘화난 사람들’의 운영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사이트에 업로드 할 콘텐츠도 제작한다. 대학등록금에 화난사람들 화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국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요구를 하는데 이어 대학에 정보공개도 청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진행된 ‘인강’에 등록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부실한 비대면 강의로 학습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이 대학교가 관리 의무를 다했는지 따져보겠다는 의미이다. 화난사람들과 투명한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전국 대학교 온라인 강의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만약 정보공개청구로 특정 대학교가 온라인강의와 관련한 학교의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드러난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학생들이 이길 가능성이 있다. 정보공개청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직접 관련 서류를 다운받아 정보공개청구를 하거나, 직접 정보공개청구를 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변호사가 대신 나서는 방식이다. 화난사람들을 통해 100명이 넘게 신고한 학교는 담당 변호사가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최초롱 대표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수업들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많았다”며 “직접 공개정보청구를 하게 될 경우 학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 대리 청구도 진행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대리 청구를 담당하는 박재천 변호사는 “현재 한림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 대학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진행됐다”며 “온라인 강의에 어떤 프로그램을 썼는지, 현장 실습 지원비가 얼마나 책정됐고 얼마나 집행됐는지, 교수들이 몇 번 강의를 했는지 등의 정보를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등록금을 민사상 채무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쓰지 않았을 때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정보 공개가 이뤄지면 법적 검토로 따져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대학 등록금이 반환된 사례가 없진 않다. 2018년 수원대학교 학생 50여 명이 학교법인과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노에서 성숙으로 화난사람들은 이외에도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 릴레이 탄원,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 법률 지원 공동 홍보, 라임사태 대응 전문가 가이드 제공, 호날두 노쇼 사건 손해배상청구 집단소송, KT아현동 지사 통신장애,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 인권위 조사 요구 진정인 모집 캠페인, 대진침대 라돈 검출 손해배상청구, BMW 차량의 화재 사고 집단소송,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 신상공개 청원, 대한항공 마일리지 혜택 변경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달을 위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약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다양한 공동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다만 공동소송 자체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공동소송이 패소했을 경우 그 책임과 손해를 누가,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해 논쟁이 있을 수 있으며 근거 없는 공동소송의 남소(濫訴)로 기업 활동에 큰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렇듯 화난사람들이 공동소송이란 국민의 권리를 돕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공동소송이 가진 본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난관도 남아있다. 공동소송이란 제도가 단순히 보상금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소비자와 이용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투명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전반의 긍정적 영향을 이끌어내는 권리로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가 공동소송 제도를 화난사람들과 같은 플랫폼들을 활용하여 성숙한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화를 자주 낼 필요 자체가 줄어들지 않을까?
제 1 호 MBTI식 문제풀이
이선우 편집장 (fhfgdvd96@naver.com) MBTI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판 혈액형이라는 평에서부터 유용한 인사관리 자료라는 평까지 다양하지만 정작 MBTI가 어떤 원리와 이유로 쓰이는지 관심을 두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MBTI의 활용과 관련된 정보들은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 만약 MBTI의 정체를 모르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남용과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MBTI의 원리와 어떤 이유로 활용되고 쓰이는지를 알아보아 인터넷에 확산된 MBTI 관련 정보들의 오류와 MBTI의 남용을 확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시작에서 비롯된 한계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이다. 캐서린 브릭스와 그녀의 딸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1942년에 같이 개발한 성격검사이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 유형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사법인데 여기서 융의 심리 유형론을 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융의 심리 유형론은 사람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을 내릴 때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융은 사람의 심리를 2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였는데, 태도 유형과 기능유형이 그것이다. 여기서 태도 유형은 정신적 에너지의 방향으로 구분하며 외부를 향하면 외향성, 내부를 향하면 내향성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그리고 기능 유형은 다시 인식기능과 판단기능으로 나누어서 인식할 때 감각과 직관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지와 판단할 때 사고와 감정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 지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인식기능과 판단기능은 각각 합리성의 유무로 구별되는데 합리적인 기능에는 사고와 감정이, 비합리적인 기능에는 감각과 직관이 해당된다. 융은 이렇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 성격이 의식되지 않는 본능적 토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설은 융이 1921년에 발표한 저서 ‘심리학적 유형’에 처음 등장한다. 위에서의 긴 설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융이 심리 유형을 구분한 기준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융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장에 기반을 둔 가설에 가까웠고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비록 융의 심리적 유형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론은 현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동시에 본래의 이론들은 재검증을 거쳐 사장되거나 수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융의 심리 유형론을 기반으로 한 MBTI는 현대 심리학과는 거리가 멀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MBTI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심리유형검사법이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 MBTI가 세계적으로 폭넓게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계에서 비롯된 유행 MBTI는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대학 등의 기관들에서 공식적으론 연간 약 200만 명 정도가 성격 유형을 검사받는 데 쓰이고 있다. MBTI는 다른 심리검사들에 비해 몇 가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로는 저렴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는 비공식이지만 무료 검사도 많으며 공식적인 검사 비용도 다른 심리검사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 이는 여러 기관에서 다수의 사람에게 검사하기에 유리하다. 두 번째로는 과정이 간단하며 신속하게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짧은 교육만으로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MBTI의 확산에 큰 장점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모두 긍정적으로 설명되며 부정적인 면은 보완해야 할 점으로서 짧게만 설명되기에 검사를 받은 당사자들이 대체로 만족하거나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이다. 사실 이점은 Big5와 같은 다른 심리 검사들에서도 나타나기에 MBTI만의 장점은 아니지만, MBTI를 포함한 심리검사 전반의 유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MBTI의 확산에 시너지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시행된 MBTI 검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비공식적인 검사법들로 왜곡되면서 심리검사에서 완전한 미신으로 변질되어갔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MBTI의 장점인 간단함과 신속함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쉽게 공식적인 MBTI검사와 비슷해 보이는 검사법을 만들 수 있었고 누구나 쉽고 빠르게 검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MBTI는 어떤 왜곡을 거쳐 남용되기 시작했을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은 케이크 자르듯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유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유형 안에 완전히 포괄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신의 성격유형이 INTP라면 그 성격 유형에서 나타나는 특성들이 본인에게 전부 나타나거나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 또한, MBTI의 성격 유형구분은 모호하고 대략적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퍼진 내용처럼 구체적으로 특정 유형들을 설명하고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 자체에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MBTI를 활용한 조언들은 실제 상황에서 부적합한 경우가 흔하다. 역시 예를 들자면 MBTI 유형을 통한 직업 적합성 판단은 마치 “특정 성격 유형에 속한 사람은 본인이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으니 수학자가 되는 것이 좋다” 수준의 판단과 같다. 당연히 MBTI를 활용한 이성 간 궁합이나 자신의 성격유형에 적합한 애완동물을 선택하는 등의 MBTI 활용은 그 정확도를 신뢰하기 어렵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서 보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과 남을 그저 MBTI만으로 규정하여 선입견을 품게 될 위험은 본인이 MBTI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재미로 점을 보듯이 비공식적인 MBTI 검사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MBTI 성격유형에 집착한다면 어떠한 근거 때문이 아닌 본인이 그 결과를 믿고 싶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떠오른다. “MBTI를 비롯한 심리 검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떤 성격유형 검사를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왜 심리 검사에 집착하는 것일까?” 불안 속에 받아 든 풀이집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느 시대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우라면 자신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많이 느낄 것이다. 단순히 취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장할수록 더욱더 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특히나 불안정하고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점점 더 ‘자신의 선택’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접해왔다. 문제는 자신을 알고 스스로 선택의 중요성은 계속 들어왔지만,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고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보편화된 과정을 따라 교육받고 남을 쫓아가는 것만 열심히 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직접 사회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안 그래도 불확실해 보이던 미래가 더 혼란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는 기관들에서 처음 접하는 심리 검사들은 간단하고 빠르며 직관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에 MBTI를 비롯한 심리 검사에 빠져드는 계기가 된다. 특히 공립기관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MBTI 검사는 혈액형이나 점성술과 달리 ‘권위’를 가진 조금이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검사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재미와 호기심에 국한되지 않고 진지하게 신뢰하는 지표로 MBTI를 활용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처음부터 우리는 심리검사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쉽게 신뢰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오다가 최근의 MBTI 유행을 맞이한 것이다. 사실 심리검사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중에는 공인된 심리학자들에게도 인정받는 검사법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가 있다. 다만 이 검사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며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전문적이라 흔하게 시행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렵고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기에 MBTI처럼 유행으로 번지기는 어려웠다. 또한 임상에도 활용될 만큼 신뢰성을 보장받았지만 이 MMPI 마저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자신이 직접 시행하는 심리검사의 특성상 시행자의 특성에 따라 왜곡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으며 애당초 검사 하나만으로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완전히 신뢰할 수준의 심리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심리검사도 어디까지나 참고 수준의 결과를 도출할 뿐이다. MBTI를 비롯한 심리검사들이 여러 기관에서 마치 시험처럼 시행되고 마치 성적이 매겨지듯이 자신의 성격유형이 정해지고 있는 것이 심리검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시험 성적에 의문을 품거나 자신의 실력을 다시 확인해 보는 것처럼 자신의 심리검사결과를 의심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심리검사에 익숙한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을 그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치부하고 심리분석 결과라는 답만 보며 스스로를 풀이하는 태도는 마치 풀이만 보고 학습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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